활의 이야기가 있는 창고

여름의 가운데.

절대로 휴가같은건 가지 않을 계절에 김해를 간 이유는 작년부터 가보고 싶던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에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작년 미술관 10주년 기념전으로 '타일전'을 했을때 꼭 가야지하며 동그라미를 수십번은 그렸건만 정신차리고 봤을때는 이미 마감이 이틀 지나있어서 결국 보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다.

그정도로 땡기는 전시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분청도자기 전시이고, 더 미루면 안가게 될 듯하여 마음을 다잡고 평일 짧은 김해나들이를 계획했다. 동행하는 친구가 있어 조금 더 탐방보다는 여행분위기를 내기 위해 김해에 있는 한옥체험관에서의 하룻밤도 예약했다.

짧았지만 순간들이 참 좋았던, 사람들이 기억에 남는 그런 여행길이었다.

아침 7시 KTX라는 어마무시한 시간대를 예약한 탓에 정말 간만에 새벽기상을 하고 평일 출근길 보다도 이른 대중교통을 탔다. 아직 본격 출근이 시작되지 않는 시간대라 지하철은 한산했지만 그 시간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무언가 일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다들 조금은 노곤해 보이고 하루의 노동이 벌써 부터 무겁게 내려앉은 표정들이었다. 무언가 정해진 노동의 시간을 살아본지가 오래된 듯한 나는 왠지 그공간에서 이방인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빵하나를 사서 물고 기차를 타자마자  고민도 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잠시 후 광명역에서 올라탄 친구가 그새 자냐며 핀잔을 주었다. 친구가 사온 김밥과 커피를 먹고 다시 취침모드. 역시 아침 7시는 무리였다.

 부산역에서 렌트카를 찾으러 가니 옆에 외국인들이 차를 빌리고 있었다. 한국에서 운전하기가 쉽지 않을텐데 용감하네..하는데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할때 스페인어로 이야기한다. 솔깃~ 그렇다고 말을 걸자니 좀 쑥스러워 그냥 나왔는데 왠지 아쉬웠다. 부산 운전하시는 분들 상당히 험악하시던데 잘 적응했으려나.. 괜히 남걱정이 여행내내 되었다.


당연히 첫 목적지는 당연히 바로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그 후기는 네이버 작업실 블로그 글로 대신한다. (http://blog.naver.com/laparada/221058807769)

미술관에서 나와 점심은 근처 맛집으로 검색한 '뚱땡이식당'으로  갔다. 사실 나는 어디가서 맛집을 잘 검색하는 사람은 아닌데 친구가 여행엔 맛집이 기본이라고 하여 여행내내 운전을 할 친구를 위해 열심히 맛집 검색을 했다. 가능하면 로컬느낌이 묻어나는 곳으로 검색을 하다가 이름이 아주 맘에 들어 갔는데 허름한 건물이었지만 가게 뒤로 주차장도 있고, 올갱이국밥이 맛있었다. 무엇보다 맛집이지만 맛집 같지 않은 소박함과 식당이름과는 전혀 다르게 마르신 주인아저씨의 선한 인상에 기분좋은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밥을 먹고 향한 곳은 아직 방문하지 못한 봉하마을이었다. 평일이어서 사람들이 있을까했는데 여전히 마을 주차장을 가득차있었다. 어떤 마음으로 사람들은 이곳을 들러가는 것일까. 내 마음부터 그렇게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한라산을 오르다가 들은 서거소식. 회사 점심시간에 광화문노제에 참여하러 갔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래도 조금은 나은 시절에 이곳을 찾아서인지 마음이 아주 무겁진 않아 다행이었다. 

  

봉화마을을 지나 김해여행지 검색을 했을때 가장 호기심을 자극했던 화포천생태 습지공원을 들렀다. 여름낮에 가기엔 전혀 적절치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저녁에 가기엔 이동 동선이 맞지 않아 일단 봉하마을에서 가까워 가보았는데 역시나 뭔가 산책모드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봄 가을 저녁나절 둘레길을 따라 걸어보면 참 좋을 그런 곳이었다. 200미터정도 걷다가 바로 백!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너무 아침일찍 움직여서 깜빡깜빡 졸려 천문대 오르는 카페에서 노닥거려보기로 했다. 분홍색을 깔맞춤을 하신 주인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셨다. 무엇보다 소파가 너무 편해서 친구도 나도 모두 10분정도씩 돌아가며 졸았다. 똑같은 시간인데 이렇게 공간이 이동되니 하루는 그렇게 조금은 더 길게 느껴졌고 잠깐 조는 쪽잠은 꿀맛같았다. 특별히 다를 것없는 행동들을 여행지에서도 하지만 그것이 '여행의 행위'로 구분되는 것은 마음의 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일상을 여행처럼 살기가 어려운것은 좀처럼 그 마음이 모드전환을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체크인 시간이 5시인 김해 한옥 체험관은 김해시내 수로왕릉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 공간이 정갈하고 예약이 그렇게 많지 않아 한산했다. 오기전에도 몇번 전화를 하셔서 체크인 시간을 확인하시며 친절함을 뿜으시던 직원분은 사투리로 열심히 이용안내를 해주셨다. 직원분이 가고 나서 친구가 말한다."같은 나라인데 모두 사투리를 쓰니까 이상하다". 그런가? 사투리가 익숙치 않은 사람들에게는 다른 지방으로의 여행이 그런 낯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에서 좀 쉬다가 저녁나절 저녁먹을 겸 나와 수로왕릉을 둘러보았다. '거북아거북아..."로 시작되던 학창시절 열심히 외우던 구지가의 구절을 떠올려보았다. 그 때 이런 장소에 왔다면 조금 더 잘 이해가 되었을까? 대부분 역사유적을 보면서 우리가 흔히 하는 추임새는 '여기가 우리가 열심히 외우던 ****이잖아." 이런 것들이다. 알쓸신잡이 따로 필요없이 사실 참 많은 것을 배우긴 한거 같은데 문제는 잘 남아있지 않고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거다. 

수로왕릉 앞에 눈에 뜨인 가게는 세계최초특허라는 오리발 모양의 오리표 목욕장갑을 팔고 있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다음날 사러 갔더니 문을 안열어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다. 김해 여행 기념품으로 하나 사 왔으면 좋았을걸. 8월에 김해를 간다는 후배에게 일단 하나 주문을 넣어 두었다. 


저녁을 먹은 맛집은 갈매기살이 맛나다는 '갈매기대도'라는 식당이었다. 이 곳 역시 맛집인데 맛집스럽지 않은, 무엇보다 주인 아주머니와 알바인지 아들들인지 모를 훈남 청년들이 정말 친절해서 기분좋게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계산하고 나오는데 '또 오시라'는 인사를 한다. "또 오고 싶은데 좀 머네요." 진심이었다.

  

낯선도시의 저녁은 편안하다. 이 도시의 삶은 사실 별반 다르지 않은 하루의 일상들이 지났을 것이지만 여행자에게 도시의 저녁은 그렇듯 조금은 환타지와 같이 흘러간다. 여행은 그렇게 어느 일상을 환타지로 모으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해보았다.

 

다음날 부산을 잠시 들러 올라오는 길, 기차안에서 오랫만에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다시 봤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나이듦에 대한 덤덤한 수긍이다. 그것에 맞춰 또 삶을 사는 여자아이의 그 덤덤함이 좋았다. 여행길에 순간순간이 참 좋듯이 어느시간이든 그런 좋은 시간들은 끊임없이 만나게 될것이다. 그건 젊으나 나이드나 마찬가지일거라 믿는다. 그 때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와..이런 순간이 있어 참 좋네. 이런 순간을 잘 볼수 있는 나여서 참 좋네'라고 할 수 있는 삶이라면 여전히 괜찮은 삶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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